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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2)
2018-11-13 01:10:33



1. 관련 학위가 꼭 필요한가요?


> 게임 번역 쪽 이력서를 받아보면 관련 학위 소지자가 반, 비 소지자가 반입니다. 물론 국문, 어문, 통번역 등 관련학과를 졸업하면 처음에 취직하는 것이 비전공자보다는 수월하겠죠. 그러나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후에는 학위보다도 경력이 훨씬 중요해집니다. 물론 이건 번역 쪽 이야기고, 통역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2. 에이전시로부터 번역료를 받는 과정과 기간?


> 일단 에이전시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여 납품합니다. 보통 에이전시 측의 전산 시스템이 따로 있는데, 작업물을 납품한 후에 시스템 상에서 그에 대한 청구서(invoice)를 제출할 수 있는 상태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이전시 측에서 받은 작업물을 확인하여 최종 완료 처리를 하면 그때 청구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되는데, 회사에 따라 이메일로 알림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고 내가 수시로 시스템에 들어가서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절차에 따라 청구서를 보내면 시스템 상에 등록된 계좌로 시일 내에 번역료가 들어옵니다.

> 보통 납품에서 입금까지 2달 정도를 잡으시면 됩니다. 에이전시도 고객에게서 수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에이전시에 납품을 한 뒤 에이전시에서 고객(사)에게 최종 납품을 하면 보통 고객(사)은 2-4주 내에 비용을 지불합니다. 이렇듯 납품과 입금 사이의 기간이 짧지 않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이것까지 고려하여 금전관리를 해야 합니다. 


3. 초보 번역가인데 요율은 어떻게 정하죠?


>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에이전시에서 고객에게 청구하는 금액 범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영한 번역의 경우 언어 간 유사성이 없고, 특히 게임 쪽은 아직 공급이 넘치지 않기에 희귀 언어로 분류되어 영어-스페인어, 영어-불어 등 유럽권 언어보다는 비싼 편입니다. 일반 번역의 경우 단어당 USD 0.10-0.15 정도이며, 특수분야의 경우 USD 0.20까지도 올라갑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에이전시의 요율이기 때문에, 에이전시에 속한 번역가들의 요율은 저것보다는 낮게 되겠죠. 위 사항과 자신의 경력 등을 감안하시어 요율을 정하시면 됩니다. 물론 고객과 직거래를 하면 더 높은 요율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번역 툴은 필수인가요?


> 네, 필수입니다. CAT(Computer-assisted Translation) Tool이라고 하는 번역 툴 없이 고품질의 결과물을 내는 것은 특히 게임 분야에서 거의 불가능합니다. 번역 툴에는 일단 용어집(Glossary/Term base) 기능이 있기 때문에, 원문에 해당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는 특정 용어가 들어있을 경우 이를 툴이 인식하여 용어를 일관성 있게 사용하게 됩니다. 또한 Translation Memory(TM)라는 기능이 있는데, 내가 (또는 같은 프로젝트에서 작업하는 다른 번역가가) 작업한 라인을 모두 메모리에 저장하여 다음에 유사한 구문이 나오는 경우 이전에 번역된 유사 구문을 보여주는 기능입니다. 또 번역 툴에는 기본적인 QA 기능이 있어 파일을 납품하기 전 기본적인 용어/구문 일관성, 공백 체크, 태그 체크 등의 검사를 할 수 있습니다.

> 에이전시와 계약하는 경우 에이전시에서 주로 CAT Tool 라이선스를 제공합니다. 제가 계약한 회사는 모두 MemoQ를 쓰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Trados를 쓰는 곳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업무용 프로그램이다 보니 가격은 개인이 감당하기에 조금 비싼 감이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CAT Tool을 체험해보고 싶으신 분은 Memsource에서 개인용 무료 계정을 제공하니 이를 이용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MemoQ와 비슷하면서 좀 더 단순하게 나와 초보자도 쉽게 쓸 수 있는 툴입니다. 구독제로 운영하는데, 유료 요금제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괜찮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Memsource를 사용해서 정이 든 것 같습니다...)


5. 번역 툴 외에 필요한 컴퓨터 관련 역량은?


> MS 엑셀을 만져본 적 없으신 분들은 엑셀을 꼭 익히시기 바랍니다. 에이전시 소속으로 번역 툴을 사용해서 순수하게 번역/리뷰만 할 경우는 크게 해당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근직을 희망하거나 나중에 PM(프로젝트 매니저) 직, 아니면 게임 산업 내 다른 분야로 이직을 희망하는 경우라면 엑셀은 필수입니다. 우선 L10N 쪽에서는 필터와 vlookup, 그리고 len(텍스트 길이 제한 때문에...)과 그 응용 함수만 잘 써도 웬만한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vlookup은 이것만 알아도 기본 사무직은 거의 커버할 수 있는... 마법의 함수입니다.)

> 그 외에도 번역 툴을 사용하다 보면 Regex가 필요한 순간이 종종 찾아옵니다. 패턴을 정의하는 일종의 문자식인데, 주로 번역 툴에 게임 내 사용되는 태그 패턴을 지정할 때 사용합니다. 패턴을 지정해 주면 태그로 인식되는 부분은 따로 묶어 텍스트와 같이 편집되지 않도록 처리하거든요. 인터넷에 regex라고 검색한 후, 막막하시면 cheat sheet 위주로 시작하는 것을 살짝 추천해 봅니다. (사실 저도 잘 못하는 거라...)


6. 게임 잘해야 되나요?


> 아닙니다. 관심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게임 용어뿐만 아니라 게이머들이 쓰는 은어도 알아야 하는데, 물론 이 은어가 실제 제품에서 쓰일 수 있는 말인지 가려낼 수 있는 센스도 당연히 있어야겠죠.


7. 외국어는 어느 정도로 잘해야 되나요?


> UI 텍스트, 아이템 설명, 시스템 메시지 등은 상급 독해 실력으로도 충분하겠지만, 대사나 스토리 등 내러티브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독해 실력뿐만 아니라 해당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수입니다. 특히 대사는...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답니다...^0^



2018-11-07 03:05:46

군더더기 없는 첫 글 제목입니다. 검색을 통해 이 곳에 오신 분들 중 게임 번역가 지망생도 꽤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로 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므로 영한 번역 기준임을 알려드리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1. 게임 번역가의 자격 요건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첫째는 언어적 소양입니다. 외국어는 독해가 중요하고, 국어는 작문이 중요합니다. 지나친 번역투 때문에 게임 몰입이 깨졌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시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국어 작문에 대한 고민 없이, "내용"을 옮기는 번역이 아닌 "문장"을 옮기는 번역만 하면 그러한 결과물이 나올 수 있습니다. 


둘째는 집중력과 꼼꼼함입니다. 몇 만 단어가 넘어가는 큰 프로젝트의 경우 몇 주간 해당 프로젝트에 완전히 몰입하여 고객으로부터 제공받은 자료 외에도 필요한 자료조사를 하며 번역을 진행하고, 검수자가 따로 있긴 하지만 내가 납품한 파일이 그대로 출시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꽤 많습니다.) 오탈자나 내용/설정상 오류까지 잡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자료조사는 특히 자신이 용어 정의를 직접 해야 할 때 중요합니다.


셋째는 창의력입니다. 흔히 센스라고 하죠. 언어적 소양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특히 다국어 마케팅 캠페인 프로젝트를 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엔 게임 내 각종 이벤트를 동시에 다국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SNS 포스팅 등) 게임 번역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위 세 가지를 모두 고려하며 만족할 만한 속도로 작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업계에서는 보통 하루 6-7시간에 2,500 단어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하루 3,000 단어를 넘어가면 날림으로 간주합니다. (물론 가끔 불가피하게 3,000 단어 이상을 해야 할 경우도 있긴 합니다.)


자격 요건이라고 했습니다만, 모두 객관적으로 측정이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께는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2. 시장 진입


자격 요건을 어느정도 갖췄으니 이제 데뷔하는 것이 수순입니다. 


I. 이력서 준비

깔끔한 포맷의 이력서를 국문, 영문 따로 준비해야 합니다. 포맷은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고 참고하면 됩니다. 번역가 이력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경력 부분이죠. 숙련된 번역가분들의 이력서를 보면 이 부분에 그동안 자신이 했던 프로젝트를 쭉 나열하여 몇 장씩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발을 들이고 싶은 초보 분들은 딱히 채울 만한 것이 없어 난감하죠.


단순한 웹사이트 형식으로 이력서를 만들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며, 요즘에는 LinkedIn으로 이를 대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렇듯 이력서는 준비가 되었는데, 텅텅 빈 경력란은 어떻게 할까요?


II. 들이대기

무엇이든 어디든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르바이트 채용 포탈에 번역 사무보조 알바 공고가 올라오는지 눈여겨보세요. 풀타임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일단 처음에는 이력서 경력란에 넣을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한 거니까요. 게임회사나 IT회사 알바면 같은 계열이니 더욱 좋겠죠. 번역 내근직은 보통 6개월-2년 사이 계약직 자리가 있으니, 급여가 나쁘지 않으면 입사해서 어느 정도의 회사 생활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 역시 이러한 경로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학생이거나 기타 사유로 파트타임 내근직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면, 아마추어 프로젝트에 참가해 경험치를 쌓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에도 유저 한글화 커뮤니티가 나름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게임 커뮤니티를 돌아보거나, 아마추어 번역을 하는 커뮤니티를 찾아 프로젝트에 참가해 보세요. 초보라 딱히 경력이 없는 경우, 이력서에 아마추어 작업 이력을 적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경력란이 조금 채워졌으면 이제 번역 에이전시에 이력서를 돌릴 수 있습니다. 게임 로컬라이제이션 전문 회사에 지원을 하셔야 나중에 게임 프로젝트를 받을 수 있으며, 회사에서 여러분의 이력서를 받은 후 마음에 들면 테스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테스트는 번역만 하는 경우도 있고, 번역과 검수 두 가지 모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하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 후에 맞는 일이 있을 때 의뢰를 받아 작업하게 되지요. 



자신에게 맞는 내근직을 찾아 회사에 들어가거나 번역 업체 테스트를 통과하여 프리랜서 등록을 하였다면 게임 번역가로서 첫 발을 성공적으로 디딘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 번역가라고 하면 프리랜서 번역가를 떠올릴 만큼, 상대적으로 수가 적어서 그런지 회사에서 번역 업무를 하는 분들에게 번역가라는 명칭은 왠지 어색한 느낌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게임)회사 생활과 프리랜서 생활의 장단점, 재택근무 요령, 그리고 지망생 분들이 자주 하실 것 같은 질문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